소품집, 물과 수안 | 이수안



수안의 사진을 보면 뭔가 알겠다는 듯이 말하고 싶어지다가 이내 그 말을 참게 된다. 사무엘 베케트는 ‘완벽하게 감지할 수 있으나 동시에 완벽하게 설명 불가능한 것을 사랑한다.’고 했다. 오전에 잠깐의 시간을 내어 읽은 이 문장이 수안의 사진을 대변하는 것 같아, 바로 밑줄을 그었다. 수안의 표류 없는 여행은 햇볕에 반짝이는 물처럼 그 아름다움을 닮아있었다.





Interview by geulwoll

Photography by grove.









수안 Suahn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진 찍고 글 쓰는, 대외적으로는 콘텐츠 기획과 편집 일을 하는 작업자 이수안입니다.

작업자라는 소개가 인상적이네요. 수안 씨는 어떤 계기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나요?
태생적으로 불행한 인간으로 태어난 건지 의심한 날이 많았어요. 이를 풀어낼 수 있는 수단이 사진이었고요.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친구들과 작업자로서 살아가고, 연대하기 위한 팀을 만들었는데, 그 덕에 지금까지도 사진을 하고 있어요.

팀 사슬로로 활동하고 있기도 해요. 사슬로는 어떤 팀인가요?
젊은 창작자들의 자생과 연대를 위해 만든 팀이에요. 20대 중반의 젊은 작가들은 작업자로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요. 그래서 이 생태계에서 나아가 개인과 전체가 함께 성장하고 살아가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현재는 멤버들 각자 생업과 개인 작업에 집중하며 개인 영역을 부지런히 다져 나아가고 있어서 활동이 느리고 더딜 수는 있겠지만 오래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예요.

팀으로 일할 때와 개인으로 일할 때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일단, 팀으로 일할 땐 뭔가 든든한 것 같아요. 나를 뒤에서 지켜주고 있는 친구들 이렇다 말이 없어도 위안을 주거든요. 반면 혼자 활동하면 그들과 떨어져서 내 생각에 집중하게 돼요.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팀과 개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어요.

근래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업이 작업이기 위해선 다른 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느끼는 감정의 창구로 작업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꾸준히 회사를 다니며 제 감정을 돌이켜보고 있죠. 그렇게 작업을 이어가는 게 저와 더 잘 맞는 흐름인 것 같아요. 한 가지 단점이라면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면 그 시스템에 치이잖아요. 감정이 매몰 되니 그 감정을 다시 되돌아오게 하는 과정을 겪고 있어요. 얼마전에 퇴사하고 다시 이직을 했거든요. 그 사이에 잊혀진 감정을 돌아보는 중이에요.










표류 없는 여행

책 《표류 없는 여행》을 통해 수안 씨의 사진과 글을 보았어요. 이 책이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을지 무척 궁금해지더라고요.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제 감정을 알지 못하는데 기록된 사진을 보면 그때 내 감정이 어땠는지 조금씩 정리가 되거든요. 이 책은 그 모든 과정이라고 생각돼요. 작업을 하다보면 글도 사진도 방대해지는데 이걸 추리는 과정에서 과연 이게 맞는지 내가 내놓고자 하는 답이 무언지, 이걸 세상에 내놓아도 괜찮을지 의문이 많았어요. 그런데 계속 가다듬다보니 어느 순간 생각하게 됐어요. 이 책을 내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요. 누군가 보지 않더라도 쓰고 풀어서 세상에 버려야지만 비로소 체감이 가능하고 제가 자립할 수 있겠더라고요.

이 책은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사진과 글로 다루는데요. 그 과정을 추리고 고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500장이 조금 넘는 사진 중에 골랐는데, 감정선을 레이어에 담고 싶었어요. 의식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간 것 같아요. 뒤집고 바꿔보면서 퍼즐 맞추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사진의 결이 정리되니까 글의 결도 같이 정리됐어요. 간략하고 담백하게 빼내는 방법을 찾았거든요.

책의 구성이 다른 사진집과 다른 점이 있어요. 사진의 이름이나 글 없이 사진만 넘겨보도록 책으로 구성하고 그 뒷면에 시처럼 읽히는 글을 모아두었죠. 그리고 엽서북과 책갈피까지 하나의 책으로 묶였더라고요. 이 구성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냈나요?
조르주 페덱의 책《사물들》을 봤거든요. 그 책을 봤을 때 모든 게 분리된 느낌이 드는 동시에 하나의 사물로 보였어요.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모아서 보면 하나의 물건처럼 느껴지게 하고 싶었죠. 그 사진들을 간직하기도 흘려보냈기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엽서집도 제작했어요.

이 책은 제목부터 시선을 끌게 하는데, 그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표류, 없는, 여행의 세 단어가 조합되지 않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을 레이어에 얻히다 보니 이건 표류가 없기도 하고 여행이 되기도 했어요. 많은 길을 걸었는데, 그 길에는 나라도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표류 없는 여행Aimless Walks’의 이름이 붙었어요.

책이 나왔을 때, 무엇이 가장 좋았어요?
일단 후련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따금 책 후기가 적힌 메시지가 오는데요. 울지 않아도 텍스트로 전해지는 우는 마음이 담긴 내용이에요. 누군가 제 책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것에 울림이 있어요. 그것을 받을 때 이 작업을 계속 해야겠다는 확신이 서요.

사진도 그렇고요. 담긴 텍스트가 뭔가 진득하다고 할까요. 스스로 잊고 있던 제 안의 진득함을 꺼내주는 느낌이 있어거든요. 본인이 찍은 사진과 글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작업자로서 살 수 있게 하는, 이렇게 가도 된다는 희망과 약간의 소명이 와닿아요. 누군가 절 봐준다는 거잖아요.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되고, 제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 수안 씨가 자주 들여다보는 사진 또는 글이 있나요?
제가 쓴 것임에도 내가 이런 문장을 썼나 생소하게 들춰보게 되는데, 3번 글을 자주 봐요. ‘취향에서 오는 폭력성’에 대한 글인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 검열하거든요. 그래서 요즘 그 문장이 계속 떠오르는 것 같아요.











소품집, 물 Collection, MUL

그로브에서 소개되는 수안 씨의 컬렉션 소품집, 물 Collection, MUL은 어떤 사진들인가요?
바다와 물은 슬픈 마음을 지켜봐 주고 물결의 품으로 안아주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찍는 사진이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는 것인지 사람들이 유독 물 사진을 좋아해줬고, 그러한 분들을 위해 물 컬렉션을 준비하고 싶었어요. 제 작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일종의 살아있다는 생존신고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기도 했고요.

컬렉션에 ‘소품집’을 붙였는데 어떤 의미로 붙인 이름인가요?
음악과 같은 건데, 시작과 끝이 있잖아요. 물의 한 부분을 찍은 사진들이 모였지만 거기에도 시작과 끝의 운율이 존재하는 것처럼 작게 나마 리듬을 주고 싶었어요. 간결하고 규모가 작은 음악을 모은 유희열의 소품집을 특히 좋아하는데 제가 그 앨범을 들으며 위로 받은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이 컬렉션이 소품집이 되길 바라며 붙인 이름이에요.

음악 앨범의 소품집을 뜻하는 단어를 물 컬렉션에 붙인거군요. 10장의 사진이 모두 물을 찍고 있으면서도 다른 장면과 색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렇게 모두 다른 장면을 고르고 모아둔 이유가 있을까요?
사람에게도 여러 면이 있는 것처럼 물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평소에 물이 이렇게 다양한 색이 있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사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 ‘물이 이래. 물이 이렇게 예쁜데.’라고요.

물과 관련해 더 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물을 오래보거든요.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물 안에 움직임이 있어요. 그걸 잘 포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의 움직임을 담을 때 그건 제가 좋아하는 움직임이잖아요. 내 시선이 담기는 거니까, 그 시선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물과 관련해 더 하고 싶은 것도 있어요?
물을 오래보거든요.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면 물 안에 움직임이 있어요. 그걸 잘 포착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의 움직임을 담을 때 그건 제가 좋아하는 움직임이잖아요. 내 시선이 담기는 거니까, 그 시선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일이네요.
그렇죠. 같은 장면으로 보일 수 있지만 미세한 부분은 항상 다르니까요.









Someone’s Eyes

그로브에서는 Someone’s Eyes 라는 컨텐츠를 통해 지속해서 사진과 관련해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이런 플랫폼이 있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요?
홀로 작업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설 수 있는 공간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플랫폼이 생기고,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장이 생기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누군가에게 계속 보여줘야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테니까요. 그런 이유로 이번 컬렉션 제안이 반가웠어요.

이런 플랫폼을 통해 변화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봤으면 좋겠어요. 휘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금더 다른 방식으로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는 사진은 많지만 그 플랫폼에 맞는 사진에 사람들이 시선이 세워지는 것 같아서 사진을 열린 시각으로 보면 좋겠어요.

그로브의 Someone’s Eyes를 관통하는 말이네요. 그로브의 슬기 씨 역시 휘발되는 사진들이 아쉬워서 Someone’s Eyes을 만들었다고 했거든요.
인스타그램만으로는 잘 안담기는 것 같아요. 사진이 제대로 보여지기 힘들다고 생각해서요.

그로브의 어울리는 사진 작가를 한 분 추천해 주신다면요?
박현성 작가(@baakyun)요. 좋은 결을 가진 친구예요. 사진을 보고 있으면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아요. 눈이 머는 것처럼 아득해진다고 할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사진들이 많은 분들의 공간으로 갈 텐데, 수안 씨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요?
마음이 놓였으면 좋겠어요. 방 한편에 둔 것을 꺼내본다라는 말처럼 이 사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집에 액자가 걸려있어도 그걸 매일 보진 않잖아요. 그게 걸렸는지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더 많고요. 그렇게 어느날 슬쩍 이 사진을 봤을 때 마음이 괜찮아졌으면 좋겠어요. 크게 바라지 않고 잔잔한 울림 정도로요.



이수안 | SUAN

사진과 문장으로 감정을 조각내는 작업자이다.
2018년 에세이 사진집 '표류 없는 여행 '을 출간했다.
현재는 서울에 기반을 두고 작가와 콘텐츠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팀 사슬로 (사진가 박현성, 하혜리, 황예지가 함께한다)와 함께한다.

www.suan-kr.com
www.instagram.com/su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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